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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은 책, 김사과 <바캉스 소설>

코코도두 2025. 4. 7. 18:30

여러분에게 갑자기 100억이 생긴다면?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삶을 상상해 봅니다. 사무실을 벗어나 바닷가 햇살 아래, 값비싼 리조트에 머물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꿈같은 상상이요. 그토록 바라던 자유를 손에 넣는다면, 우리는 과연 진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책 <바캉스 소설>은 그에 대한 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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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과 <바캉스 소설>_책표지

《바캉스 소설》 줄거리

주인공 이로아는 남들이 선망하는 세계적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노예'랑 다를 게 없다고 느껴요. 이로아는 자기가 누구인가를 잊을 정도로 필사적으로 일하지만, 결국 어느 순간 권고퇴직 수준의 압박을 받게 됩니다. 안 그래도 업무로 스트레스가 심했던 이로아는 약물과 쇼핑에 의존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죠.

 

숫자 감각이 굉장히 좋은 이로아는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기 시작합니다. 퇴사하고도 지금 수준의 라이프스타일 이상으로 살려면 도대체 얼마가 필요한지 계산을 해보죠. 결과는… 세븐티투 밀리언 달러. 원화로 900억 가량의 돈이었습니다.

 책<바캉스소설> 중

직장인들이 하루 중 아주 잠깐 동안 수용소에서 풀려나는 점심시간. 그들이 어떤 미치광이 소리를 내며 울부짖든지 그것은 이해를 해줘야만 한다고 이로아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게 다 돈 때문이니까. 우리, 돈에 목줄 걸린 노예들......이 끔찍한 디지털 목화밭을 탈출하는 데 필요한 돈의 액수는 과연 얼마일까? ( 책 <바캉스소설> 중)

 

앞서 말했듯 이로아는 숫자 감각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죠. 이로아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뉴스에 관심을 가지고 섭렵하기 시작했고, 거기서 어떤 흐름과 기회를 발견했으며, 정확하고 과감하게 자신의 자산을 주식에 투자해서 무려 1733.03%라는 수익률을 기록합니다.

책<바캉스소설>

증권사 앱에 접속했다. '총자산 현황 102억 2487만 7천......' 그녀는 부자가 되었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 책<바캉스소설> 중)

 

이로아는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도로 향합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지금보다는 약간 미래 같아요. 기후위기로 제주가 열대지방이 되었고, 엄청난 세계 자본이 들어와서 제주를 바꿔놓았습니다. 제주는 전 세계인들이 찾는 유명한 럭셔리 휴양지가 된 것이죠. 이로아는 그중에서 값비싼 리조트에 머물면서 지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어딘지 권태롭고 불안해 보입니다. 최고의 시설에서 돈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행복하지 않은 날들이 계속됩니다.

 

그러던 중 이로아는 귀신같은 것을 보는 이상한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쫓다가 어린아이의 시체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이로아는 변합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죽음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사건을 파헤치려고 하죠.

 

이로아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신해남과 그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 어울리며 한 가지 비밀을 알게 됩니다. 그 비밀의 정체를 파헤치며 이야기는 점점 미스터리하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흘러가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이 소설의 중반부터 후반까지의 내용을 이룹니다.

 

《바캉스 소설》이 좋았던 점

1.

초반부가 굉장히 흡입력 있게 흘러갑니다. 주식투자나 로또 당첨으로 엄청난 돈을 벌고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 안 해본 직장인이 있을까요? 쓰리샷 커피까지는 아니더라도 카페인의 도움으로 하루하루 고된 직장 생활을 견디며, 새된 목소리로 12시 40분 카페에서 떠들지 않아 본 사람이 있을까요?

 

이렇게 공감을 끌어올리고 있을 때 터지는 이로아의 '주식 대박'은 엄청난 대리 만족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생각하는 그 환상적인 삶으로 걸어 들어가, 그 삶을 눈에 선하게 보여주지요.

 

2.

다소 비관적이기는 하지만 직장인들의 모습을 너무 현실감 있게 잘 써서 굉장히 공감하면서 봤습니다. ‘노예’라는 표현이 자극적이기는 하지만 사실 크게 다르지 않죠. 그렇게 직장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또 어렸을 때부터 얼마나 달립니까? 어렸을 때부터 그야말로 '자유'라는 게 뭔지 모르고 살았는데, 결국 성인이 되고 소위 성공했다고 일컬어지는 인생에도 '자유'가 없는 아이러니를 작품은 신랄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3.

마지막으로 이 소설의 독특한 점은 단순한 이야기 전개가 아니라, 꿈과 현실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작가의 문체에 있습니다. 엄청 헷갈립니다. 현실인가 싶어서 보면 꿈 같고, 꿈인가 하면 현실이죠. 마치 엄청난 수의 다중우주가 펼쳐져 있는데 그것들을 뛰어넘으면서 여기저기로 왔다 갔다 이동하는 느낌이에요.

 

뭐가 진짜인지 알 수가 없어서 짜증이 슬슬 올라올 것 같을 때, 독자는 깨닫게 됩니다. '상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가 생각만큼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요. 제 생각엔 이게 이 책의 가장 독특한 점입니다. 철학책에서 난해한 말로 풀어낼만한 이야기를 김사과 작가가 가진 특유의 재능을 써서 이야기의 형태로 보여준 거죠.

 

인상 깊었던 구절들

 넌 너 자신조차 믿지 않았잖아. 그 벌을 이제 받는 거야. 너는 네 삶에 대해 무책임했지. 스스로의 삶을 방치했어. 그저 노예처럼 끌려다녔지. 이제는 늦었어. 너는 끝난 거나 마찬가지야.
자유란 없다. 원래도 없었고, 발명된 적도 없었고, 단 한 번도 누군가 그것을 소유했던 적도 없다. 자유란 완벽한 불가능성, 막다른 길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즉, 인간은 전부 노예다.

엄마는 말야, 일생을 세계의 진실을 파악하는 데 온 힘을 쏟아왔어. 왠지 아니? 그러지 않고서야 돈을 벌 수가 없거든.......
자신이 태어나 살아가는 세계 자체가 스스로 창조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믿을 수도 있다. 사실 이것은 이로아가 사춘기 이후 마음 깊이 유지하고 있는 믿음이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 그녀를 포함한 세계 전체가 그녀가 스스로를 위해  창조해 낸 맞춤형 고문실인 것은 아닐까?

 

내 생각에《바캉스 소설》은 이런 책

 

우리는 흔히 '돈=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알고 있죠. 하지만 작품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돈'은 물질이고, '자유'는 정신입니다. 필요조건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절대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소설은 보여줍니다. 그러면 '자유'는 가능한 개념일까요? 

 

결국 《바캉스 소설》은 돈을 위해서는 스스로를 고문실에 넣어야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모순과 민낯을 보여주면서, 독자에게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여러분이 생각하는 '자유'는 무엇인가요? 라고 말이죠. 이 소설은 독자가 '진실'을 궁금해하고, 들여다보게 이끄는 힘이 있는 소설입니다. 자유를 위해 돈을 벌고 싶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