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사자와 영양이은 서로 눈이 마주칩니다. 영양은 도망치고, 사자는 쫓습니다. 너무 당연해 보이는 이 장면 속에도 놀라운 진화의 법칙이 숨겨져 있습니다.
왜 어떤 동물은 싸우고, 어떤 동물은 피할까요? 동물들의 싸움 방식은 단순히 본능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유전자가 정한 전략, 즉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ESS)에 따라 행동합니다. 이번 장에서는 게임이론의 ESS 개념을 이해하고, 동물 행동에 숨겨진 진화적 전략을 탐구해 보겠습니다.
다른 생존 기계는 환경의 일부
자연에서 동물들은 단순히 개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환경이 됩니다. 생존 기계는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다른 생명체를 자원으로 활용하거나, 경쟁 대상으로 삼습니다.
예를 들어, 두더지와 지빠귀는 직접 마주치지 않더라도 지렁이라는 자원을 두고 경쟁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개체들이 간접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지요. 자연선택은 이러한 환경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유전자를 선호합니다. 각 개체는 서로의 생존 기계이자, 진화적 환경의 일부로 작동합니다.
_형식적인 공격행동
동물들은 단순히 상대를 제거하려고 싸우지 않습니다. 대신 형식적이고 절제된 싸움을 통해 손실을 최소화합니다.
생존 기계가 자신의 경쟁자를 무조건 죽이는 것이 가장 논리적일 것 같지만, 자연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동물의 싸움은 형식적이고 절제된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싸움은 대체로 상대를 죽이는 데까지 이르지 않아요.
이것은 손익 계산의 결과입니다. 경쟁자를 죽이는 것이 단기적으로 유리할지라도,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득이 되는 게 아니라, 어부지리로 다른 경쟁자에게 기회를 줄 위험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B라는 경쟁자를 죽이면, C라는 또 다른 경쟁자가 그 빈자리를 차지해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따라서 동물들은 신체적 손실과 에너지 낭비를 줄이기 위해 싸움을 제한된 수준에서 마무리합니다.
게임이론과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
메이너드 스미스는 게임이론 은 동물의 행동을 설명하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그의 핵심 개념인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ESS)은 개체군의 대다수가 특정 전략을 채택했을 때, 다른 대체 전략이 이를 능가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ESS는 단순히 이기적인 전략이 아니라, 전체 개체군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개념은 자연계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는 유용한 전략입니다.
_ 매파와 비둘기파
도킨스는 ESS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매파와 비둘기파 모델을 제시합니다. 매파는 공격적이고, 비둘기 파는 온순합니다. 두 전략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매파는 비둘기파를 쉽게 이기지만, 매파끼리 싸우면 큰 손실을 입습니다. 반면, 비둘기파끼리는 다치지 않지만 경쟁에서 자원을 잃기 쉽습니다.
결국, 매파와 비둘기파는 안정된 비율로 공존하게 됩니다. 이는 싸움의 전략이 개체 간의 단순한 우열 관계가 아니라, 생존에 최적화된 균형 상태임을 보여줍니다. ESS는 이 두 전략이 공존하는 최적의 균형점을 제시합니다.
_ 보복자와 불량배
보복자는 처음에는 비둘기파처럼 행동하지만, 상대가 공격하면 매파처럼 강하게 대응합니다. 이러한 조건부 전략은 싸움의 빈도를 줄이고, 필요할 때만 공격함으로써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을 가능하게 합니다.
반면, 불량배 전략은 처음에는 매파처럼 공격적이지만, 반격을 받으면 도망칩니다. 이 전략은 불안정하며, 장기적으로 생존에 유리하지 않습니다. 도킨스는 보복자가 ESS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하며, 전략의 유연성이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합니다.
_ 시뮬레이션과 실제
이론적 ESS 결과는 자연계에서 관찰되는 동물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싸움의 결과는 승리와 부상의 위험, 시간 낭비 등의 요소에 따라 달라지며, 이는 동물의 생태적 환경과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예를 들어, 바다표범의 경우 승리의 대가로 큰 하렘을 독점할 수 있으므로 싸움이 격렬하고 중상의 위험도 높습니다. 반면, 추운 지방의 작은 새들은 짧은 시간에 자원을 확보해야 하므로 싸움에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싸움에 소요되는 짧은 시간조차 이들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자연계의 모든 현상을 정확히 계량화할 수는 없지만, ESS는 진화적 안정성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개념입니다. ESS는 단순히 개체의 이익이 아닌, 개체군 전체의 균형을 고려하는 전략을 제시합니다.
_ 소모전
소모전은 싸움에서 물리적 충돌 없이 승패가 결정되는 방식입니다. 이는 자원을 두고 다투는 동물들이 위험한 부상을 피하려는 전략으로, 상대방이 먼저 포기할 때까지 기다리며 시간을 소비합니다. 즉, 상대가 먼저 포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핵심이지요.
소모전에서 자원의 가치는 시간에 따라 평가됩니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시간 낭비라는 비용이 커지며, 동물들은 자원의 가치를 기준으로 버틸 시간을 설정합니다. 그러나 개체군 내에서 버티는 시간이 일정하다면, 조금 더 오래 버티는 돌연변이가 등장해 이길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따라서 고정된 시간 전략은 진화적으로 안정하지 않습니다.
결국 소모전의 ESS는 각 개체가 버티는 시간이 예측 불가능하도록 하는 전략입니다. 자원의 가치가 5분이라면, 어떤 개체는 5분 이상 버틸 수도 있고, 어떤 개체는 그보다 짧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상대가 내 포기 시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모전에서는 자신의 포기 의사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대가 포기 신호를 알아차린다면, 승리를 위해 조금 더 버틸 전략을 취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선택은 포커페이스를 선호하게 됩니다. 포커페이스는 상대에게 신호를 보내지 않는 전략으로, 소모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기여합니다. 즉, 포커페이스가 ESS로 자리 잡게 됩니다.
비대칭적 싸움
메이너드 스미스는 싸움이 대칭적이지 않은 경우도 고려했습니다. 현실에서는 개체 간 전투 능력, 자원의 가치, 또는 단순히 도착 시간 등 다양한 비대칭성이 존재합니다. 싸움이 대칭적일 때와 비대칭적일 때, 전략은 크게 달라집니다. 전투 능력, 체구의 크기, 생존을 위한 자원의 가치 등 여러 요소가 ESS에 영향을 미칩니다.
_영역방어
영역 방어는 비대칭적 싸움의 ESS 중 하나입니다. 틴버겐의 가시고기 실험은 거주자와 침입자 간의 비대칭적 싸움을 잘 보여줍니다. 거주자는 자신의 영역에서 공격적이고, 침입자는 물러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싸움의 결과가 단순한 힘의 대결이 아니라, 상황적 유리함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_체구의 차이
큰 동물일수록 싸움에서 유리할까요?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러나 역설적 전략도 가능합니다. 모든 개체가 큰 상대를 공격하고 작은 상대를 피한다면, 상식에 반하는 이 전략도 ESS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_ 순위제
과거 싸움의 경험을 기억하는 동물들 사이에서는 순위제가 형성됩니다. 순위가 높은 개체는 낮은 개체를 쉽게 제압하며, 싸움은 점차 줄어들게 됩니다. 예컨대, 닭이나 원숭이는 상대를 기억하고, 이전에 자신을 이긴 상대에게 항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순위제는 집단 내의 심한 다툼을 줄이고, 결과적으로 집단 전체의 효율성을 높입니다. 예컨대, 순위제가 확립된 닭 무리는 그렇지 않은 무리보다 산란율이 높습니다.
_같은 종끼리 또는 다른 종끼리
같은 종끼리의 다툼은 자원을 놓고 벌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다른 종 간의 싸움은 자원의 가치가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자와 영양은 고기를 두고 서로 경쟁하지만, 영양은 자신의 생존 기계의 일부인 근육을 유지하기 위해 고기를 필요로 합니다. 이처럼 다른 종 간의 비대칭성은 싸움의 성격을 결정합니다.
_ESS 개념
ESS 개념은 다윈 이후 진화론에서 가장 중요한 진보 중 하나로,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ESS는 독립적인 개체들이 경쟁하는 과정에서,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균형 상태를 설명합니다.
유전자 풀 내에서도 ESS 개념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좋은 유전자는 유전자 풀에서 다른 유전자와 조화를 이루며 선택됩니다. 이는 독립적인 유전자의 선택이 결국 유전자 집단의 안정성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결론적으로, ESS는 개체와 유전자 수준 모두에서 진화적 안정성을 설명하는 강력한 도구이며, 이를 통해 동물 행동과 유전자 간의 상호작용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의 행동은 단순히 충동적이거나 무작위적인 것이 아닙니다. 각 개체 안에 있는 유전자들은 진화적 과정을 통해 생존 확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ESS)을 이미 프로그램해 두었습니다. 공격과 협력, 심지어는 물러나는 행동까지도 유전자 풀의 장기적 안정성을 위해 설계된 결과입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5장은 이러한 개념을 다양한 사례와 모델을 통해 명쾌하게 설명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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