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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도서 리스트

중학생 아들이 ‘끝까지’ 읽은 한국 SF 소설집 — 『리시안셔스』

by 코코도두 2025. 4. 9.

평소에는 책 보다 스마트폰을 훨씬 더 좋아하는 우리 아들이, 식탁 위에 올려둔 소설집 『리시안셔스』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더 놀라웠던 건, 끝까지 다 읽었다는 거예요.

 

딱 한 마디만 물어봤습니다. "재밌니?" 사춘기 한가운데를 지나는 중3 아이다운 반응. 말없이 고개만 끄덕끄덕. 그래서 생각했어요. 혹시 중학생 자녀에게 읽힐 책을 찾고 계신다면, 이 책을 꼭 한 번 권해드리고 싶다고요.

 

리시안셔스 / 연여름 (2022, 황금가지)

 

재미있는 책으로 아이 '독서 성공' 시키기

사실 어른들도 그렇잖아요.추천 도서니, 올해의 책이니 해서 책을 사보지만 몇 장 넘기다가 재미없으면 그대로 덮어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하물며 아이들은 더합니다. 세상에 재미있는 게 너무 많은데 굳이 책을 펼쳐야 할 이유를 느끼기란 정말 쉽지 않죠. 그래서 저는 독서 습관을 만들기 이전, 먼저 '독서 성공 경험'부터 만들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책은 짧고, 재미있고, 흡입력 있어야 하죠. 그렇게 처음 끝까지 다 읽어본 한 권이, 아이의 독서 인생을 바꿔놓기도 하니까요.

 

독서 성공률 높은 책 <리시안셔스>

이 책은 제가 먼저 읽었어요. 짧고 부담 없고, 술술 읽히는 책이라 출퇴근길에 한두 편씩 봤는데… 왠 걸요, 어떤 날은 출근길에 눈물이 났고, 어떤 날은 정류장에 도착했는데도 내리고 싶지 않을 만큼 몰입되더라고요. 19금 내용도 없고 표현도 차분해서 ‘아이들도 읽기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어느 날, 그냥 식탁 위에 툭 올려놨어요. 그리고 남편에게 "이거 재밌더라, 애들이 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일부러 아이 앞에서 말을 꺼냈어요. 며칠 후, 밥을 먹던 아이가 슬쩍 책을 펼치더니 그냥 쭉… 읽기 시작했어요. 그게 시작이었고, 결국 끝까지 다 읽었죠. 그걸 보면서 생각했죠. "아, 이건 정말 아이에게도 통하는 이야기구나."

 

<리시안셔스> 어떤 책이길래?

『리시안셔스』는 한국 SF 어워드 수상 작가 연여름의 첫 번째 단편 소설집이에요. (참고로 그 뒤에  '달빛수사'라는 장편소설도 나왔는데 이것도 재밌습니다.)

 

총 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대체로 미래를 배경으로 과학기술이 발달한 세계에서 이야기가 펼쳐져요. 사람과 구분이 거의 안 될 정도로 정교한 외모를 가진 AI 로봇들과 공존하는 세계가 익숙하게 등장하죠.

 

한 편당 40~50페이지 남짓이라 짬날 때 한 편씩 읽기에 딱 좋고, 다루고 있는 주제는 다소 무겁지만 문장이 짧고 묘사가 간결해서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에요. 무엇보다도 ‘생각할 거리’흥미로운 이야기 안에 자연스럽게 담아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장 좋았던 작품 추천 3


△ 리시안셔스

먼 미래에 황폐해진 지구에서 사람은 몸을 인공 신체로 교체할 수 있는 ‘인간’과 그렇지 못한 ‘미등록’으로 나뉘게 돼요. 엄청난 의학기술이 발전되어 있지만, 궁핍하게 사는 미등록들은 아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사는 동안 내내 병을 앓다 죽게 되는 처지입니다. 이러한 삶에 지친 ‘진’은 스스로의 생명을 종료하기로 결심하다가, ‘규희’라는 인간의 '반려인'으로 선택돼요. '반려견'도 아니고 '반려묘'도 아니고 '반려인'이라니, 도대체 그게 뭘지 작품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 좀비 보호 구역

좀비 사태가 터진 후, 김유월은 1년 3개월째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존자들은 정부에서 지급하는 재난배급카드로 코인을 받아 빠듯하게 생계를 유지하는 상황. 그 와중에도 김유월은 좀비 사태 전 단골이던 카페를 찾아가 월 2회, 비싼 돈을 주고 아아를 사 마셔요. 그건 유월에게 남은 거의 유일한 사치이자, 위안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정부에서 연락이 옵니다. 팬카페에서 알게 된 지인이, 좀비가 되었다가 인간으로 회복되는 실험 대상자가 되었고, 그 사람의 사회적 회복 가능성을 관찰해 달라는 요청이었어요. 그 대가로 받는 코인은 현재의 두 배. 즉, 유월은 그만큼 더 자주 아아를 마실 수 있다는 뜻이었죠. 결국 그는 위험을 감수하기로 합니다. 오직, 아아 한 잔을 더 마시기 위해.

△ 오프더레코드

플랜 B라는 바에 중년 여성이 혼자 와서 마티니를 마십니다. 바텐더는 작년에는 다른 일행과 함께 왔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일행이야기를 꺼냈다가, 오늘은 혼자라는 여성 손님의 말에 머쓱해서 서비스로 마티니를 줍니다. 손님은 술 한 잔 값은 될 거라며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죠. 그때 같이 왔던 일행은 셰이프시프터, 즉 형체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바텐더는 놀랐지만 손님이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아 이야기를 계속 듣죠. 셰이프시프터는 보통 죽은 사람의 외모를 1년에 단 하루만 빌려 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손님이 사랑했던 사람의  모습으로 일 년에 한 번씩 나타나 20년을 만났죠. 그러나 오늘, 플랜 B에 손님은 혼자입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는 책에서 찾아보세요.

평소 책을 즐겨 읽지 않던 아이도, 한 장 한 장 끝까지 넘기게 만든 이야기. 『리시안셔스』는 그런 힘이 있는 책이었습니다. 혹시 요즘, 아이에게 책을 권하고 싶은데 어떤 책부터 시작해야 할지 망설여졌다면 저는 이 책을, 조용히 식탁 위에 올려두는 방법으로 추천드립니다. :)

 

 
리시안셔스
한국 SF 어워드 수상 작가 연여름의 첫 번째 단편 소설집 『리시안셔스』가 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다. 수상작 「리시안셔스」을 비롯, 수상 후보작인 「시금치 소테」 등을 포함하여 서정적이면서도 발랄한 매력이 돋보이는 총 9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
연여름
출판
황금가지
출판일
2022.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