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의 허상에 빠지지 않도록, 실체를 파악하라는 닐 포스트먼의 예언적 메시지
『죽도록 즐기기』는 미디어 비평의 대가 닐 포스트먼이 1985년에 발표한 기념비적인 저서로, 미디어 시대의 본질과 그 위험성을 꿰뚫어본 예언서입니다. 활자시대의 쇠퇴와 텔레비전 시대의 부상을 탐구한 이 책은, 무비판적으로 매체에 빠져드는 현대인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웁니다. 저자는 영상매체가 정치, 교육, 공적 담론 등 모든 영역을 쇼비즈니스화시키는 현실을 고발하며, 미디어의 허상에 함몰되지 않도록 실체를 파악하라고 경고합니다. 이 책은 우리의 미디어 환경을 날카롭게 해부하며, 성찰 없는 미디어 소비의 위험성을 생생하게 드러냅니다.
차례
제1부
01 미디어는 메타포다
- 실로 지금 우리는 정치인들이 경쟁적으로 다루어야 할 전문영역이 이념ideology에서 화장법cosmetics으로 바뀐 시점에 와 있는 듯하다.
- 이 책은 20세기 후반 가장 의미심장한 미국의 문화적 사실(활자시대의 쇠퇴와 텔레비전 시대의 부상)에 대한 탐구와 탄식인 셈이다. 이러한 주력매체간 전환은 공공담론의 내용과 의미를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극적으로 변화시켰는데, 이 두 매체는 너무도 달라 동일한 사고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 활자의 영향력이 약화되자 정치, 종교, 교육, 그리고 공공 비즈니스를 둘러싼 모든 분야에 걸쳐 그 내용을 텔레비전에 적합하게끔 바꾸고 새롭게 주조해야 했다.
- 언어와 마찬가지로 각각의 매체는 생각하고 표현하고 느끼는 데 있어서 새로운 방향감각을 제시하기 때문에 독특한 담론형식을 만들어낸다.
- 우리가 말을 통하든 아니면 문자나 텔레비전 카메라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든지 간에, 우리가 접하는 매체가 방출하는 메타포는 세계를 분류하고 계열화하고 틀지우고 확대하고 축소하고 채색하여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나름대로의 인식론을 편다.
* 에른스트 캇시러(Ernst Cassirer) : 물리적인 현실은, 인간의 상징적 활동이 두드러지면서 그에 반비례하여 희미해지는 듯싶다. 사물 자체를 다루기보다는 인간은 어떤 면에서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하고 있다. 인간은 언어형식, 예술적 이미지, 신비적 상징이나 종교적 의식 속에 스스로 갇혀 있기에 인위적인 매체의 개입 없이는 아무것도 볼 수도 인식할 수도 없다.
- 그런데 특이하게도 사람들은 매체가 개입함으로써 우리가 보거나 알게 될 것을 지정하는 역할에 대해서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 : 세계는 분과 초라는 '생산품'을 만들어내는 강력한 기계장치와 같다.
-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핵심은, 글쓰기나 시계와 같은 기술을 문화에 도입하면 시간을 붙들어매기 위한 인간의 능력을 단순히 확장시킬 뿐만 아니라, 사고방식은 물론 나아가 문화의 내용까지 변질시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내가 매체를 메타포라고 부르는 의미다.
02 인식론으로서의 매체
- 이 책의 독자라면 누구나 인쇄시대 지성의 일반적인 특성을 잘 알겠지만, 이 책을 읽을 때 자신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 단순히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그 특성이 무엇인지 합리적으로 선명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 무엇보다도 먼저, 독자 여러분은 상당한 시간 동안 대체로 움직이지 않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신체를 구속하는 것은 그저 최소한의 요건일 뿐이다. 또한 당신은 책장 위 글자의 모양새에는 관심가질 필요가 없음도 익혔으리라. 말하지면 글자로 조합된 단어의 의미에 직접 다가가기 위해서는 겉모습을 꿰뚫어봐야 한다는 뜻이다....
- 당신이 심미적 혼란 없이 글자의 의미를 파악하는 법을 배웠다면, 다음에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이 태도를 버트런트 러셀이 "수사법에 대한 면역"이라고 부른, 글의 감각적인 즐거움, 매력적인 이끌림, 환심을 사려는 논조와 글에서 주장하는 논리를 분별해야 하는 수고를 포괄한다.
- 아울러 글의 논조를 통해 주제 및 독자에 대한 저자의 태도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바꿔 말하면, 당신은 농담과 주장의 차이를 알아야만 한다는 뜻이다.
- 그리고 논점의 수준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당신은 몇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 전체적인 논지가 끝날 때까지 판단을 유보하고, 언제 어디서 답변이 제시되는지 또는 과연 답변을 제시하기는 하는지 확인하기까지 의문을 되새기며, 아울러 본문과 관계있는 당신의 모든 관련 경험을 제시되는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가져와야 한다.
-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글이 모든 것을 표현하는 마법과 같다는 믿음을 포기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먼저 추상의 세계를 다루는 법을 익혀야 한다....
- 지성이란, 개념과 개괄의 영역에서 그림 없이도 편안히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내포한다.
03 인쇄시대 미국
- 다니엘 부어스틴(Daniel Boorstin): "독서문화는 널리 확산되고 있었다. 어느 곳을 중심지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곳이 확산의 중심지였다. 사람들은 인쇄물과 가까이 있엇 모든 내용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은 같은 언어로 말할 수 있었다. 독서문화는 분주하고 활동적이며 공적인 사회의 산물이었다."
- 제이콥 뒤체(Jacon Duche): "델라웨어의 바닷가에 사는 극빈 노동자조차도 종교나 정치문제에 대해 신사나 학자들 못지않게 자유로이 자신의 느낌을 전할 자격이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야말로 거의모든 사람들이 독서가이기에 온갖 종류의 책을 읽고 드러내는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 19세기 내내 상당수의 영국인들이 식민지의 변화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자 미국을 찾았다. 그들은 모두 높은 수준의 교양과 특히 계층간 구분 없이 문자문화가 확산된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그들은 도처에 강당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는데, 거기서는 강연회와 같은 구연 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인쇄 전통의 약점을 보강하고 있었다. 이들 강당의 상당수는 성인교육의 일환으로 생긴 라이시엄 운동Lyseum Movement의 결실이었다.
04 인쇄문화, 인쇄정신
- 인쇄문화 지배하에서 공공담론은 사실과 이해를 논리정연하고 질서있게 전개시키는 특성을 갖는다. 이를 수용하는 대중들도 대체적으로 그러한 담론을 다룰 역량이 충분하다. 인쇄문화에서 작가들은 거짓말할 때, 모순에 빠질 때, 일반화를 입증하지 못할 때, 비논리적인 연계를 억지로 시도할 때 실수를 범한다. 반면, 독자들은 인쇄문화에서 작가 실수를 알아채지 못했거나 더욱 나쁜 것은 이를 개의치 않을 때, 실수를 범하는 셈이다.
- 18세기와 19세기에는 ... 진지하며 논리적으로 질서정연한 내용을 전달하는 공공담론 형식이 촉진되었다. 이성의 시대가 유럽과 미국에서 차례로 인쇄문화의 성장과 함께 공존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 스티븐 빈센트 베네의 단편소설 『악마와 대니얼 웹스터』 : "그가 사용하는 명료하고 철저하게 간결한 언어, 논제에 대한 엄청난 이해력, 실제적인 자료에서 도출한 풍부한 사례, 날카로운 분석과 이의제기, 복잡하게 얽힌 안건을 풀어내어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도록 알기 쉽게 하나하나 설명하는 능력,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온 힘을 다 쏟아 굳세게 설득하는 모습, 지킬 수 없는 입장에 열을 내거나 쓸모없는 데 자신의 능력을 낭비하는 식으로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주의하는 태도."
- 초창기 미국에서 지성과 진실, 그리고 공공담론의 본질이 특정한 형태로 드러나게끔 이끈 인쇄된 글의 역할을 이해하려면, 18~19세기의 독서행위는 오늘날과 달리 전혀 다른 속성을 지녔다는 사실을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먼저, 전에 언급했듯이 인쇄된 글은 당시 사람들의 괌심과 지성을 독점했으며, 구어전통을 제외하고는 공공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다른 방편이 존재하지 않았다. 공적 인물은 주로 자신의 글을 통해 유명해졌지, 외모는 물론이고 연설능력은 더욱 아니었다. ..그러한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그들이 쓴 글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들의 공적 지위나 그들의 주장, 그리고 글로 체계화된 그들의 지식을 판단한다는 의미였다.
05 비까뿌 세상
- 구두문화나 인쇄문화에서 정보의 중요성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수준에 달려 있다. 물론, 어떤 의사소통 환경에서든 투입량(사람들이 접하는 정보)이 산출량(정보에 근거한 행동)보다는 항상 많게 마련이다. 그러나 전신이 빚어낸 잇따른 기술체계가 악화시킨 상황으로 인해 정보와 행동의 관계는 분리되어 버렸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들은 정보과잉의 문제에 직면했는데, 이는 동시에 사회 및 정치적 권위가 약화되는 문제에 직면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이제 역사상 최초로, 질문과 무관하게 답하고 때로는 응답할 권리조차 허용하지 않는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 루이스 멈포드의 표현을 빌자면, 전신으로 인해 시간이 단절되고 주의력이 결핍된 새로운 세계가 조성되었다. 전신의 주된 능력은 정보의 운송량이지 정보를 수집하고 설명하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점에서 전신은 인쇄술의 정 반대편에 있었다.
- 우리의 문화는 이제 텔레비전의 인식론에 거의 다 길들여졌다. 즉,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 규정되는 진실, 지식, 사실을 너무도 철저하게 받아들이기에 쓸모 없는 것들이 중요한 것인 양, 그리고 모슨된 것들이 대단히 합리적인 양 우리 안에 가득 들어앉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회적 관습이나 제도 중 일부가 시대적 규범과 잘 맞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이제는 시대적 규범을 문제삼기보다는 본래의 관습이나 제도가 이상하거나 잘못되었다고 여긴다.
- 텔레비전은 문화를 쇼비즈니스를 위한 거대한 무대로 바꿔버리고 있다. 물론 종국에는 우리들도 그것이 즐겁다고 알게 되고 또 그것을 수용하기로 결정하리란 것도 분명하다. 70여 년 전 올더스 헉슬리가 언젠가 닥쳐올까 봐 두려워하던 상황이 바로 이것이었다.
제1부까지 감상
닐 포스트먼의 '죽도록 즐기기'는 미디어적 경험이 우리의 사고방식과 인식의 틀을 얼마나 뒤흔드는지 경고합니다. 우리가 눈앞에서 마주하는 세계는 사실은 미디어라는 메타포의 필터를 거쳐 변형된 '현실'이며, 이는 우리의 사고를 깊이 잠식합니다.
활자문화는 인류가 논리와 이성을 기반으로 세계를 구축해 나가던 시기에는 정치가, 학자가, 그리고 평범한 시민이 모두 논리적 사고를 통해 깊이 있는 토론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하지만 텔레비전이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공공 담론은 서서히 사라지고, 시각적 매력과 감각적 자극이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지요.
정치인은 더 이상 자신의 이념이나 정책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지로, 감정으로, 그리고 순간적인 매력으로 대중을 유혹합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보이는 진실'인 것이죠.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 속에서 미디어의 메타포가 세상을 어떻게 조작하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신이 등장한 순간부터, 우리는 끊임없는 정보량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그리고 오늘날 디지털 미디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진실을 확대하거나 축소하고, 세상을 마치 끊임없이 반짝이는 유리조각처럼 왜곡된 모습으로 제시하기도 합니다. 넘쳐나는 정보가 더이상 행동에 영향을 주는 정보가 될 수 없을때, 우리는 무력감을 느끼고 정보를 단순 유희로 소비하는 경향이 짙어집니다.
이 책은 1985년에 쓰여졌기 때문에, 텔레비전이나 전신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지금의 현실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가 더 심각해졌죠. 지금의 시대적 관점으로는 스마트폰이나 각종 SNS로 이해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우리 사회가 텔레비전과 그 후속 미디어에 길들여진 결과로 '즐겁게 죽어가는' 모습을 예견한 이 책이 나온지가 거의 40년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헉슬리가 경고한 그 시대가 이미 우리앞에 와 있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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