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06 쇼비즈니스 시대
- 과연 텔레비전이 무엇일까? 텔레비전으로는 어떤 식의 의사소통이 가능할까? 텔레비전은 어떤 지적 성향을 부추길까? 그리고 텔레비전이 잉태하여 낳은 문화는 어떤 모습일까?
- 실제로 미국의 TV방송이란 매일 같이 수천 개 이미지를 쏟아부어 만드는 멋진 구경거리나 시각적 환희와 다를 바 없다. 방송 화면에서 한 장면이 머무는 평균시간이 3.5초에 불과하기에, 우리 눈은 쉴 새 없이 무엇인가 새로운 볼거리를 접하게 된다. 더욱이 시청자는 텔레비전에서 온갖 볼거리를 접하기 때문에,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감정적인 만족을 목표로 하게 된다. 심지어 일부에선 골칫거리 정도로 여기는 광고조차도 신나는 음악과 함께 시각적 즐거움을 줄 수 있도록 정교하게 구성한다. 따라서 현재 텔레비전 상업광고에 나오는 장면이 세계 최고의 사진작품이라는 데에는 아무도 이의가 없다. 미국의 TV 방송은 시청자에게 즐길거리를 쏟아붓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다.
- 여기서의 논점은 텔레비전이 오락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으로 인해 모든 경험적 표현이 자연스럽게 오락적 형태를 띠게 되었다는 점이다.....무엇을 묘사하든, 어떤 관점에서 전달하든, 가장 중요한 전제는 즐겁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 시각적 세계에는 생각의 여지가 거의 없다. 생각은 막간이 아닌 행간에 존재한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볼거리를 요구한다.
-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순간순간 생동감 있게 바뀌는 수백만 가지 동영상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시각적인 만족감을 주기 위해 사고력을 억누를 수밖에 없는 TV매체의 본질이다.
07 자, 다음 뉴스는...
- "자, 다음은..."이라는 말은 라디오나 텔레비전 뉴스진행자가 방금 전에 보거나 들은 내용이 잇달아 접할 내용과 전혀 무관함을 알려주기 위해 사용한다.... 그렇기에 이 구절은, 초고속 전자매체로 그려진 세상은 질서도 없고 의미도 없기에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단초이기도 하다.
- 텔레비전은 진실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제공한다. 즉, 화자에 대한 신뢰도 여부가 어떤 진술의 진실성을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여기서 '신뢰성'이란 가혹한 현실 검사에서 살아남은 화자의 과거 경력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는 단지 배우 같은 뉴스진행자에게서 풍기는 성실성, 확실성, 취약성, 흡인력과 같은 느낌이나 인상을 뜻한다.
- 이는 심각한 문제다. 왜냐하면 텔레비전 뉴스쇼에서 진실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하는 문제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만약 텔레비전에서 진실을 말하는 결정적 기준이 사실 자체보다 전달자의 신뢰성에 달려 있다면, 유면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그럴듯하게 유지하는 이상 사실을 말하는 여부에는 그리 신경 쓸 필요가 없다.
- 텔레비전은 차라리 '허위정보'라고 부르는 게 나을 만한 새로운 정보유형을 만들어 내면서 '정보화'의 의미를 변질시키고 있다....'허위정보'란.... 오해하도록 유도하는 정보,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실제로는 엉뚱한 쪽으로 이끌어가는 정보(제 위치를 벗어난 정보, 상황에 맞지 않는 정보, 단편적인 정보, 피상적인 정보)를 뜻한다.
- 뉴스가 오락물처럼 그럴듯하게 포장될 대 사람들은 일관성 있고 합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들은 고도의 정보화가 무슨 의미인지 깨닫는 감각을 잃고 있다. 무지는 언제든지 바로잡을 수 있다. 그러나 무지를 지식으로 여기고 있다면 어찌할 것인가?
- 우리 모두는 "자, 다음은..."이라는 뉴스세계(모든 사건이 개별적으로 다루어지고, 전후관계는 물론 다른 사건과의 연관성까지 배제된, 파편화된 세계)에 철저하게 길들여져 있기에, 일관성을 기준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모조리 상실해 버렸다.
- 헉슬리는 모순에 무감각하고 기술이 주는 재미에 중독된 대중에게 아무것도 감출 필요가 없음을 간파했다.
09 이미지가 좋아야 당선된다
-TV광고는 음악, 드라마, 영상, 유머, 볼거리 등 쇼비즈니스의 모든 요소를 한데 묶어 제공하면서, <자본론>이 출간된 이래 자본주의 이념에 가장 맹공을 퍼붓는 세력으로 부상했다.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과학이나 자유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역시 계몽주의의 산물임을 상기해야 한다.
- 자본주의란 사고파는 상방 상호 간 이익을 도모하는 데 있어서 원숙하고 사리에 밝으며 이성적이라는 전제하에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자본주의 엔진을 가동하는 연료가 탐욕이라면, 이성은 운전수임이 확실하다. 이러한 이치는, 구매자가 자신의 필요뿐 아니라 무엇이 좋은 제품인지에 대해서도 알아야 시장경쟁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무가치한 상품을 만들어 팔면, 이성적인 시장원칙에 따라 망하게 되어 있다.
- 그러나 TV광고는 아예 (자본주의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어떤 주장이건 이성적으로 받아들여지려면 반드시 언어로 제시해야 한다. 엄밀하게는 '참'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담론 세계인 명제와 같은 형태를 취해야 한다. 이러한 담론 세계를 저버린다면, 경험적 검증이나 논리적 분석 또는 그 밖의 이성적 도구를 적용하는 일이 쓸모 없어진다.
- 주장하는 말 대신 이미지로 표현한 상업광고로 인해, 소비자의 구매결정은 사실여부의 판단이 아니라 감정적 호소에 근거하게 되었다. 이제는 합리성과 광고의 간극이 너무 커 한때 서로 연관성이 잇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기 어려운 정도다.
- TV광고는 판매제품의 특징과는 전혀 무관하며, 제품을 살 소비자의 특성과 관계가 깊다.... 광고주가 알아야 할 사항은 제품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아니라 구매자에 관해 알지 못했던 사실들이다. 그래서 사업예산의 균형추가 제품조사에서 시장조사로 넘어갔다. TV광고로 인해 사업활동의 방향성이 쓸모 있는 제품생산보다는 소비자가 가치 있게 느끼도록 하는 쪽으로 이동했다.
- 텔레비전은 누가 누구보다 더 나은지 (정치인) 알 수 없도록 판단을 흐린다. 물론 여기서 '더 낫다'는 의미는 조정능력이 더 뛰어나고, 발상이 뛰어난 실행력이 있으며, 국제관계에 대한 이해가 더욱 풍부하고, 복잡한 경제문제를 더 잘 이해하는 등등을 뜻한다.
- 텔레비전이 우리의 판단을 흐리는 이유는 대부분 '이미지'와 관계가 깊다. 하지만 텔레비전은 이미지에 오명을 덧씌운다. 왜냐하면 텔레비전에서 정치인이 자신의 이미지를 전달한다기보다는 시청자들이 품고 있는 이미지에 맞춰 자신이 제시되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누가 대통령이나 주지사나 상원의원으로 적격인지 알 방도가 없으며, 다만 누구의 이미지가 마음속 불만을 어루만지고 달래는데 최선인지 느낄 뿐이다.
- 텔레비전은 빛과 같이 빠른 현재 중심적 매체다. 말하자면 텔레비전의 의사소통체계는 과거에 대한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텔레비전은 조각난 정보를 이동만 시키지 취합하거나 체계화하지 못한다.
- 테렌스 모란 <정치 1984> : "구조적으로 이미지와 단편적인 정보만을 제공하도록 편향된 매체로 인해 역사적인 전망을 갖고 접근하기가 힘들어졌다. 연속성과 맥락이 결여된 세계에선, 개개 정보에서 수준 높은 의미를 해석해 내거나 전체적으로 일관성 있게 통합하기 힘들다"
-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TV에 몰두하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그러나 우리가 접하는 이 매체는 정보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하고, 실체를 없애며, 역사성을 제거하고, 전후 맥락을 배제시켜 버린다. 즉, 오락이란 형태로 조립, 포장한 상품으로 정보를 제시한다.
10 재미있어야 배운다
- TV는 '텔레비전 식 배움'을 촉진시키며, 학교교육과는 태생적으로 배타적이다.... 나아가 더 중요한 사실은 <세서미 스트리트>를 보고 아이들이 글자나 숫자를 배우는 여부는 완전히 핵심을 벗어난 문제다... 배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어떤 식으로 배우는가 하는 문제와 늘 관련된다. 듀이가 다른 데서 언급했듯이, 사람들은 행동하는 대로 체득한다. 텔레비전은 아이들로 하여금 TV시청 때 유발되는 행동습관대로 행하도록 가르친다. 이는 교실에서 공부할 때 필요한 자질과는 완전히 다른데, 마치 책 읽기와 쇼무대 관람과의 차이만큼 그렇다.
- 조지 컴스톡을 비롯한 연구원들이 텔레비전이 인간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2,800여 건의 연구사례를 검토했지만 "정보를 극적 상황에서 제공할 때 학습효과가 증가한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는 잡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 정반대의 결론이 옳다는 근거가 나왔다.
- 다수의 명망 있는 연구결과로 볼 때 TV 시청이 학습효과를 뚜렷하게 향상하지 못함은 물론 고도의 추상적 사고를 배양하는 데 있어서도 독서에 훨씬 못 미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학교 커리큘럼을 구성하는 TV 제작물은 그 내용이 텔레비전의 특성(=오락)에 따라 결정되고, 더욱 나쁜 점은 그러한 특성은 학습의 목적과는 전혀 무관하다.
-결국 학생들이 주로 배우는 것은, 학습은 오락과 다를 바 없으며, 배울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이건 오락물로 변형할 수 있으며, 그래야만 한다는 관념이다.
11. 헉슬리의 경고
- 문화적 풍조가 황폐화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문화가 감옥이 되는 오웰식이다. 두 번째는 문화가 스트립쇼와 같이 저속해지는 헉슬리식이다.
- 텔레비전에서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늘 텔레비전을 본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따라서 해결책은 텔레비전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사실 우리 모두는 텔레비전이 과연 무엇인지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유는, '정보'란 과연 무엇이며 어떤 식으로 문화를 이끄는가에 대해 폭넓은 공감대는커녕 의미 있는 논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 매체의 위험성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정보가 조직되는 체계와 그 영향에 대한 깊이 있고 확실한 자각으로 매체의 신비를 벗겨내야만,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어느 정도 통제할 희망이 있다.
- 헉슬리 " 멋진 신세계에선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 없이 웃고만 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이 무엇을 보고 웃는지, 왜 생각을 멈추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2부 감상정리
*죽도록 즐기기* 2부에 대한 감상을 정리하면, 닐 포스트먼은 텔레비전이라는 시청각 매체가 우리의 사고방식과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이 단순히 오락을 제공하는 매체를 넘어서, 정치, 종교, 교육, 경제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경험을 '오락적'으로 변질시키고 있다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포스트먼이 강조하는 핵심은 텔레비전이 모든 것을 단편적이고 감정적인 것으로 전환시킨다는 점입니다. 텔레비전 속 정보는 단편적으로 제공되며, 맥락이나 논리, 역사적 배경이 생략된 채 빠르게 소비됩니다. 특히 뉴스에서 "자, 다음은..."이라는 말이 사건 간의 연속성이나 맥락을 지워버리고, 사건들이 무질서하게 나열되어 '일관성 없는' 세상을 보여주게 된다는 그의 지적은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이는 정보의 과잉 속에서 사람들이 더 이상 진정한 지식에 접근하지 못하고, 피상적이고 감정적인 반응만을 하게 되는 문제로 이어지죠.
또한 포스트먼은 텔레비전이 진실을 전달하는 방식도 비판합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진술의 내용보다 전달자의 신뢰성이나 이미지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며, 이로 인해 진실 자체보다는 누가 그것을 말하느냐에 더 집중하게 된다는 그의 주장은 매우 시사적입니다. 이는 정치나 광고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문제로, 사람들은 논리나 사실에 근거한 판단을 하기보다는 이미지를 통해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특히 정치적 리더십이 외모나 태도에 의해 판단되는 현실을 포스트먼은 날카롭게 꼬집고 있죠.
그가 제시한 '허위정보' 개념도 매우 중요한데, 텔레비전이 제공하는 정보는 그 자체로 진실이 아닐 수 있으며, 오히려 대중을 오해하게 만들고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경고입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잘못된 정보를 지식으로 착각하게 되고, 비판적 사고의 기회를 놓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는 정보가 넘쳐나는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문제입니다.
포스트먼은 또한 TV 광고가 자본주의의 본질을 어떻게 왜곡하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광고는 이성적 사고보다는 감정적 호소에 기반하고, 소비자는 제품의 실제 가치나 필요성을 판단하기보다는 광고에서 제공하는 감정적 자극에 의해 구매 결정을 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였던 이성과 논리가 사라지고, 오락성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됩니다.
결국 포스트먼이 경고하는 것은 텔레비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우리의 사고방식과 문화적 태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비판입니다. 그가 말하는 '오락적 문화'는 피상적이고 감각적인 즐거움에 치중하며, 깊이 있는 사고와 논의가 배제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헉슬리가 예견한 '감각의 쾌락에 빠진 대중'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포스트먼의 메시지는 단순히 텔레비전을 끊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미디어를 어떻게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진정한 의미와 지식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한 숙제입니다.
닐 포스트먼 <죽도록 즐기기>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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