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8장에서는 가족 내부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부모-자식 간 갈등, 편애, 양육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룹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러한 가족 간 상호작용을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에서 설명하며, 생존과 번식의 전략을 탐구합니다.
1. 가족 내부의 이해관계
1.1 편애
이 책에서 하는 '편애'라는 말은 어미의 자원을 자식에게 불균등하게 분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미는 자식에게 먹이를 주거나 교육을 하거나 위험으로부터 보살피는 등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어미의 입장에서는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죠. 인간 사회에서는 이러한 투입을 측정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화폐로 변환하기도 하는데요, 동물의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972년 트리버스라는 학자가 이 문제를 ‘양육투자’라는 개념으로 해결을 시도합니다.
1.2 양육투자
양육투자란 ‘자손 하나에 대한 투자로서, 다른 자손에 대한 양육 투자 능력을 희생시키면서 그 자손의 생존확률(번식성공도)을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젖먹이 아이를 둘 둔 어미가 한 아이에게 젖을 더 많이 주면, 다른 아이는 그만큼 젖을 덜 먹었기 때문에 그만큼 생존확률이 떨어지겠지요. 이 양(=P.I)을 측정하는 것이 양육투자입니다.
모든 어른 개체는 자식에게 투자할 수 있는 일정한 총량의 P.I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른 개체는 이 P.I를 어떻게 써야 할까요? 7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너무 많은 새끼에게 골고루 줘도 안 되고(왜냐하면, 충분하게 먹지 못해 굶어 죽는 새끼가 너무 많으므로), 소수에게 P.I를 다 투입해서 응석받이로 키워서도 안 됩니다. 그러면 후손이 너무 적어지니까요.
따라서 경쟁자 중에 최고로 적당한 숫자의 새끼에게 적당하게 P.I를 투입한 개체가 유전적으로 가장 많이 번식하여 성공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어미가 편애하는 것이 유전자 번식에 득이 되면 어미는 편애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하지 않을 것입니다.
1.3 편애하는 것이 유리한가
사실 모든 자식은 1/2의 유전적 근연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정 자식을 편애할 유전적 근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살고 죽는 문제를 선택해야 할 만큼 급박한 상황에서는 막내보다는 첫째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막내가 첫째만큼 크는데 그만큼 자원이 더 들어가니까요.
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어미는 막내에게 먹이를 더 줄 것입니다. 이유는 첫째는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막내는 어미가 챙겨주지 않으면 굶어 죽고 말테니까요. 젖을 떼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젖을 주던 자식에게서 젖을 떼고, 장래의 자식에 대한 투자로 전환하는 게 더 유리한 시기가 옵니다.
그렇다면 지금 막내가 나의 마지막 자식이고 앞으로 더 낳을 계획이 없다면 어떨까요? 마지막 새끼라면 어미는 그 자식에게 자신의 모든 자원을 투자할까요? 아마 그것보다는 손자나 조카에게 투자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들의 근연도 역시 자식의 반이지만 1/4이나 되고, 어미의 자원 투입으로 인해 자식들은 더 큰 이익을 볼 테니까요.)
1.4 폐경
이 시점에서 폐경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여성이 죽을 때까지 아이를 낳는 것은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에서 해볼 만한 일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어머니가 자식에 비하면 비록 그의 반이지만 손자들과도 근연관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암컷의 폐경의 진화에 대한 가설을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노령의 산모가 낳은 아기의 기대수명은 젊은 여성이 낳은 아기의 기대수명보다 짧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여성의 아이와 손자가 같은 날 태어났다면 손자가 오래 살 거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산수입니다. 자기가 낳은 아이가 어른이 될 확률이 동갑내기 손자가 어른이 될 확률보다 1/2 낮아지는 나이가 되면 여성은 자기 자식보다 손자 쪽으로 투자하게 하는 유전자가 유리하게 되어 번창할 것입니다. 즉, 손자에 대한 이타적 행동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유전자 풀 속에 널리 퍼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 연령에 이른 여성들의 생식능력을 상실하도록 작용하는 유전자가 점점 많아졌을 것이라는 가설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부모의 입장 특히 어미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투자전략이 무엇인지를 보아왔는데요, 자식들 각각은 부모의 편애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요? 자식들 간에도 편애를 받기 위한 경쟁이 있지 않을까요?
1.5 어미의 이타적 행동과 자식의 이기적 행동
어미는 자식에게 이타적 행동을 하는 것이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 더 유리하기 때문에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에서 그러한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자식의 입장에서 한번 볼게요. 부모-자식, 형제자매간, 둘 다 근연도는 1/2입니다. 그러니까 유전적으로 말하면 형제자매도 내 유전자의 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에 대한 이타성을 가지는 만큼 나는 내 형제자매에게 이타성을 갖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근연도는 1이라는 사실을요.
부모의 경우도 자기 자신이 1이지만 1/2인 자식을 더 챙기는 이유는 그게 기대수명 등등 여러 가지 면에서 득이 되는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형제자매는 달라요. 모든 조건이 같다면 자신이 1이기 때문에 이기적 행동을 취합니다.
하지만 조건이 달라진다면 늘 이기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아주 어린 막내가 있어요. 밥이 한 숟가락 있는데, 나는 이걸 안 먹어도 살 수 있지만 막내는 이걸 안 먹으면 죽을 상황이에요. 그러면 그것을 막내에게 주는 것이 유전적으로 맞는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것도 비슷하죠.
1.6 젖 떼기
어미는 앞으로 태어날 자식을 위해 젖을 떼려고 할 것이고, 지금 젖먹이 아이는 계속 젖을 달라고 떼를 씁니다. 젖먹이 아이가 자식 입장에서 젖을 떼는 순간은, 자기가 어미 곁을 떠나 독립적으로 생활하고, 그 젖을 동생에게 양보하는 게 자기 유전자 전파에 유리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어미의 입장에서는 자식이 커가면서 그 자식에게 젖을 먹이는 것을 중단하고(그 자식이 어미로부터 빼앗은 양육투자량이 어린 자식보다 상대적으로 클 경우) 대신 새 자식에게 젖을 먹이는 것이 유리한 순간이 옵니다. 이 두 순간의 시기차이는 있지만 결국 젖떼기는 이루어집니다.
1.7 이기적인 새끼
많은 새들은 둥지를 틀고 새끼를 보살핍니다. 배가 고픈 새끼들은 큰 소리로 울어대죠. 만약 배고픈 정도와 비례한 목소리 크기로 울어댔다면, 어미는 큰 소리로 우는 새끼에게 먹이를 먹이는 방법으로 공평한 분배를 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기적인 새끼는 배고픔과 관계없이 그냥 크게 울어댑니다. 그러니 먹이를 얻어먹으려면 모두 더욱 크게 울어야겠죠. 결국 목소리 크기는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하지만 이 울음소리가 무한정 커지진 않아요. 포식자를 끌어들이거나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쓸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1.8 허약한 막내
자식 중에는 유난히 허약한 막내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막내는 힘차게 울지 못해 형제들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죽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막내는 과연 끝까지 살기 위해 노력했을까요? 이기적 유전자 관점에서는 아닐 수 있습니다. 자기가 사는 것보다 50% 확률로 자기 유전자를 가진 형제가 살아남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되면 명예롭게(?) 죽음을 택하는 유전자가 번성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어미는 최적의 한 배 알 수보다 하나 더 가지는 전략을 택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면 그 해 먹이가 풍족할 경우 막내를 살릴 수 있고, 반대 상황이라도 새끼 크기순으로 먹이를 주며 막내를 빨리 죽게 해 손실을 막을 수 있었겠죠. 이것은 실제로 많은 조류에서 관찰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1.9 세대 간의 전쟁
새끼들은 부모에게 더 많은 먹이를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칩니다. 더 배고픈 척, 더 위험에 처한 척을 하면서 말이에요. 부모는 이것이 거짓인지 진실인지를 잘 판별해야 해요. 왜냐하면 그런 자식 때문에 다른 자식이 굶어 죽어 자신의 소중한 유전자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죠.
1.10 새끼의 거짓말
동물학자 자하비는 새끼가 지독한 공갈협박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포식자를 불러들일 만큼 큰 소리로 울어서 부모가 자기에게만 먹이를 주게끔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저자는 이것은 본인에게도 너무나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1.11 뻐꾸기의 공갈협박
하지만 뻐꾸기 새끼는 달라요. 뻐꾸기 새끼는 자기와 같이 둥지에서 살고 있는 개체들이 자기 유전자를 가진 혈연개체가 아니기 때문에 빽빽 크게 울 수 있습니다. 어미는 뻐꾸기가 큰 소리로 울어서 포식자가 오면 자기 자신과 새끼들이 죽을 수 있기 때문에 뻐꾸기에게 먹이를 더 먹이게 됩니다. 저자의 가설에 따르면 이러한 이유로 (다른 일반적인 새들과는 다르게) 뻐꾸기에게는 크게 우는 것이 더 이익이 될 수 있으므로 그러한 유전자들이 퍼질 수 있다는 것이죠.
학자들은 뻐꾸기 알을 키우게 되는 양부모들이 정말 자기 알이 아닌 알을 구분할 수 없는지 궁금해져서 실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둥지에 다른 새의 알을 가져다 놨죠. 어미가 구분능력이 있다면, 어미가 스스로 그 알이나 새끼를 가져가 처리하면 될 테니까요.
그런 게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 번은 제비새끼 한 마리를 까치둥지에 넣었는데 제비새끼가 까치알을 밀어 떨어 뜨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에서는 제비가 까치둥지에 가있을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처음 벌어지는 일에 제비새끼의 본능이 이렇게 작동한다는 것이죠.
저자는 어쩌면 모든 새끼들은 자기의 경쟁자가 될 형제자매를 죽이고 자기가 이익을 독차지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지 추측합니다. 왜냐면, 만약 다른 새의 알이나 새끼가 자기 둥지에 있다면 언제나 그것은 어른새가 처리하는 게 훨씬 쉽고 간단한데 이 일을 새끼가 하니까요.
1.12 형제 살해 유전자
어미가 5개의 알을 낮은 게 적정하다고 생각하고, 5개의 알을 낳았다면 어미는 늘 1/5로 먹이를 나누어 공평하게 주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자식의 입장은 달라요 1/5이 아니라 1/4, 1/3 그 이상을 원하죠. 자신의 유전자가 형제자매에게 있을 확률은 50%밖에 안되지만, 자기 자신이 살아서 번식한다면 자기 유전자 전파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모든 새끼가 형제살해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2. 갈등의 승자: 부모-자식 간에 갈등이 일어나면 누가 이길까?
부모-자식간에 갈등의 승자는 누구일까요? 리처드 도킨스는 이 답을 찾기 위해서 알렉산더라는 학자의 논문을 반박하며 설명을 이어갑니다. 알렉산더는 '항상 부모가 이긴다'라고 주장했는데, 그는 왜 그런 주장을 했으며, 저자는 왜 이 주장을 비판하는지 이제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1 부모가 이긴다는 논리
알렉산더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 만약 어떤 새끼가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부모의 자원을 더 차지해(부모한테 이겨서), 어미의 번식 성적을 감소시킨다면
- 그 새끼의 유전자는 자기가 부모가 되었을 때 자신도 똑같은 일을 당할 것이기 때문에 자기의 번식 성적도 감소할 것이다.
- 즉, 그 이기적 유전자는 결국 번성하지 못하고 부모 자식 간 갈등에서 이기는 것은 항상 부모일 수밖에 없다.
2.2 자식이 이긴다는 논리
저자는 이 주장에 의심을 품습니다. 저자가 알렉산더의 주장에 반박하는 논리는 아래와 같습니다.
- 첫째: 자식의 체내에 있는 유전자는 부모를 압도하는 능력을 갖도록 선택될 것이고, 부모의 체내에 있는 유전자는 자식을 압도하는 능력을 갖도록 선택될 것입니다. 하지만 같은 유전자가 자신의 상황에 따라서 다른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은 말이 되는 일일까요? 저자는 말이 된다도 말합니다. 이유는 유전자는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선택되기 때문이죠. 자식이었을 때와 부모가 되었을 때 이용할 수 있는 기회는 다르니까요.
- 둘째: 부모가 자식에게 공평하게 분배하려는 이유는 자신과 50% 근연도를 가지는 개체를 가급적 모두 지키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새끼 한 마리 한 마리는 자기 자신이 살아남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의 근연도는 100%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부모는 언제나 자식에게 질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100%를 지키려는 동기가 50%를 지키려는 동기보다 강하니까요.
2.3 자식이 숨겨둔 에이스 카드
알렉산더는 먹이를 물어오는 등 중요한 역할을 부모가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부모가 자기의 뜻을 자식에게 강요할 수 있는 입장이라고 말합니다. 만약 부모가 먹기를 물어다 주지 않으면 자식들은 죽고 말 테니까요. 더 크고 힘이 센 몸, 풍부한 경험 등 좋은 것들은 다 부모가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자식들도 에이스 카드를 몇 개 쥐고 있습니다.
부모는 먹이를 나눠주기 위해서 자식들의 배고픈 정도를 알아야 하는데, 자식들은 여기서 거짓말을 하는데 아주 능합니다. 또 자식이 만족스러울 때를 부모가 아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부모는 그런 신호를 보상으로 느끼게끔 진화했는데요, 자식들은 이것을 이용해서 적정 배분량 이상의 투자를 받아 내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대 간(부모-자식)의 전쟁에서 누가 이길까 하는 질문에는 일반적인 답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단지 최종적으로는 부모와 자식이 서로에게 기대하는 이상적 상태 사이에서 어떤 타협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뻐꾸기와 양부모처럼 완벽한 이기성으로 대립하지는 않을 겁니다.
저자는 우리가 여기서 인간 윤리에 대해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면, 자식에게 이타주의를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식들의 생물학적 본성에 이타주의가 심어져 있다고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8장은 가족 내 갈등과 생존 전략을 탐구하며, 부모와 자식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유전적 성공을 극대화하는지 보여줍니다. 다음 장에서는 '암수의 전쟁'을 다루며 이것이 생태적, 진화적 관점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더욱 깊이 살펴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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